나의 산행기

2022.04.17 장미산,중앙탑,탄금대

구름 비 2022. 4. 18. 23:31

산행일시 : 2022.04.17 장미산

갈        :시청역(06:50)장미산버스정류장(08:46)

탐방행로 :장미산버스정류장(08:55)봉학사(09:19)장미산(09:35)고구려전시관(10:30)

                 중앙탑(11:31버스이동)탄금대 (12:41버스이동)

올     때 : 탄금대주차장(14:30)신사역(17:05)

 

 

 

요번 산행은 한가하고 넉넉한 시간이 될것 같다. 산행이 아니고 관광지 트레킹이라고 하면 될것 같다.

 

 

아스팔트 임도길을 20여분 오르자 겉으로 가난한 티가 물씬 풍기는 봉학사가 나타난다.

옅은 신록의 계절, 연두의 색깔이 아주 보기 좋다.

 

 

 

시청역을 떠난 M산악회 버스는 장미산 들머리에 2시간여만에 도착한다.

가까운 곳이라 일찍 도착하니 지루하지 않아 좋다. 도로가에 벚꽃은 끝물이다.

 

 

겨울 회색의 빛은 어느덧 가고  보기좋은 연두의 계절이다.

 

 

 

장미산성

 

 

 

한가하고 여유로운 휴식터

 

 

 

몸이 풀릴때쯤 되니 정상이다. 산행은 아니고 야산 트레킹으로써 봄내음을 맡으러 나온 나들인것 같다.

 

 

 

산길은 끝이고 도로가 보이는 신작로를 주욱 따라가면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이다.

 

 

 

운행하는 차량은 드물고 한가로운 도로와 나무테크를 조금 지나면 고구려비 전시관이다.

 

 

 

유료낙시터 상당히 비싼것 같다.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

 

 

 

전시관에 1시간여 관람하고 버스로 중앙탑으로 이동한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忠州 塔坪里 七層石塔)은 남북국 시대(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원성왕 12년에 건립되었다.[1] 국보 제6호로서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있는, 남한강 상류의 강가 높은 토단 위에 건립되었다. 이중기단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규모가 커서 기단과 하층부는 여러 장의 판석으로 짜여 있으나 체감률(각 층의 옥개석이 상부로 갈수록 작아지는 비율)이 좋고 옥개석 귀마루 부분이 살짝 치켜 올라가서 경쾌한 느낌을 준다.

 

 

탄금대

문화재 지정소재지

명승 제42호
충북 충주시

신라 진흥왕 때인 552년 악성(樂聖)으로 불린 우륵(于勒)은 가야국의 멸망을 예견하고 신라에 귀화했다. 진흥왕은 우륵을 반기며 국원(충주)에 거주하게 했다. 그리고 신라의 청년인 법지, 계곡, 만덕을 선발해 악(樂)을 배우게 하고 우륵을 보좌하도록 했다. 이런 연유로 우륵은 만년에 멸망한 가야국을 떠나 충주에 우거했다.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한 나지막한 산은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우륵은 이곳의 풍치를 탐미하여 산 정상에 있는 너럭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탔다. 이곳이 바로 우륵이 금(琴)을 탄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탄금대(彈琴臺)’다. 우륵이 연주하는 가야금의 미묘한 소리는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고 곧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탄금대 주변에는 지금도 가야금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다. 칠곡리(칠금동), 금뇌리(금능리), 청금리(청금정) 등의 마을 명칭은 모두 가야금과 관련된 것이다.

탄금대는 충주시 근처에 있는 대문산(108m)의 정상을 지칭한다. 산 아래로 남한강이 흐르는데 강변에 기암절벽이 형성되어 있고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어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절벽을 따라 강물이 휘감아도는 탄금대는 남한강과 너른 들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강줄기의 모습은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벼랑에 위치한 열두대에서 가장 잘 보인다. 정상부에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탄금정이 있고, 동쪽으로는 계명산과 남산이 솟아 있으며 아래로는 충주 시가지와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자전거 도로 .

탄금대에서 팔당대교까지 123.4Km 정도 된다고 하네요

 

 

 

열두대
분   류 : 문화재 > 유적지
지   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충북 충주시 칠금동 산 1  82-043-848-2246 )

탄금대 북쪽에 있는 절벽을 ‘열두대’라하는데, 이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순별사 신립장군이 휘하 8,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배수진을 쳐 왜적 가등청정과 소서행장의 군대를 맞아 분전했으나 참패, 달래강에 투신 자살한 곳이기도 하다.

열두대는 그 당시 신립이 왜적과 격전을 벌리면서 휘하 군사들을 격려하기 위해(또는 열을 받은 활을 강물에 식히기 위해) 30여 미터나 되는 절벽을 무려 열두번이나 오르내렸다는 데서 붙여진 전설이라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삼국사기에 보면, 우륵이 뜯었다는 가야금이 열두줄이요, 또 가야곡이 열두곡이라 했다. 기록에 따르면, 우륵은 하가라도, 상가라도, 보기, 달기, 사물, 사자기, 거열, 사팔혜, 이사, 상기물, 물혜, 하기물의 12곡을 지었다고 한다.
한편, 가야금의 위편이 둥근 것은 하늘의 상징이고 밑이 평평한 것은 땅을 뜻한다고 했다. 또 가운데가 텅비고 줄이 열둘인 것은 각각 육합과 12개월에 해당한다고 했다. 가야금 12줄이 일년 열두달에 상응한다고 했듯이 우륵의 12곡도 역시 나름대로 이곳 탄금대의 열두대와 어떤 걸림이라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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